한식 읽기 좋은 날

2018
101

Vol 12. 화려한 미식의 고향, 전라북도

꽁꽁 언 몸을 녹이는 소울푸드, 곰탕 vs 설렁탕

2023/11/1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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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끝이 에이는 찬 바람이 부는 계절이면, 꼭 생각나는 음식이 있다. 바로 곰탕과 설렁탕. 김이 모락모락 나는 쇠고기 국물을 후루룩 마시면 몸과 마음이 스르르 풀려버린다. 단백질과 지방이 녹아든 국물은 체온 유지에 급급하던 몸을 다시 활활 타게 돕는 에너지원이 된다. ‘한국인의 소울푸드’를 자처하는 곰탕과 설렁탕이 설전을 벌인다.

설렁탕 이미지1

황금빛 고기 국물, 나는 곰탕이올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탕의 민족’이라고 불릴 만큼 국에다 밥을 말아 먹는 것을 좋아한다. 국에다 밥을 만 음식을 탕반 또는 장국밥이라 한다. 장국밥의 탕은 대개 고기로 끓인 설렁탕, 가리탕, 곰탕, 육개장 등이 있다.
그 중에서도 소고기의 여러 부위를 넣고 푹 고아낸 나, 곰탕이야말로 탕 중 대표주자 아닐까.  나는 곰국이라고도 불리는데, 조선 말기에 편찬된 저자 미상의 조리서인 「시의전서」에 처음 등장한다. ‘고음국(膏飮)은 큰 솥에 물을 많이 붓고 다리뼈, 사태, 도가니, 홀때기, 꼬리, 양, 곤자소니, 전복, 해삼을 넣고 은근한 불로 푹 고아야 국물이 진하고 뽀얗다.’ 이후의 음식 책에도 모두 ‘곰국’으로 나온다. 1924년에 지어진 한국음식 책인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고기를 데친 쇠족, 꼬리털, 무를 통으로 넣어 곤 후 꺼내어 네모지게 썰어 진장 간을 하고, 고기는 육개장같이 썰어 장, 기름, 후춧가루, 깨소금을 쳐서 한참 주무른 후에 먹을 때 고기를 넣어 먹는다.’

곰탕을 토렴하는 이미지

그렇다면 내 이름에는 왜 ‘곰’자가 들어갈까? 곰이 아니라 소가 들어가는데…. 우리말의 어원을 분석해보면 답이 나온다. 국어사전에서 ‘고다’는 ‘뭉그러지도록 푹 삶다’ 혹은 ‘진액만 남도록 푹 끓이다’라는 뜻으로 풀이하고 있다. 또한 ‘고다’의 어근인 ‘고’는 한자어 ‘膏(기름 고, 기름질 고)’에서 나왔고, ‘고음(膏飮)’이 한마디로 줄어서 ‘곰’이 된 것임을 추측할 수 있다.
곰탕을 좌우하는 건 뭐니 뭐니 해도 국물 맛. 가마솥에서 푹 곤 진한 국물 맛은 어떤 음식도 모방할 수 없다. 조리과정에서도 양념이 거의 들어가지 않는다. 소고기 본래의 구수한 국물 맛을 살리기 위해서이다. 이를 위해선 원재료가 고급이어야 하고 곰탕을 우려내는 시간과 고기를 삶아내는 요령이 중요하다. 핏물을 뺀 곰거리들을 초반엔 센 불로 팔팔 끓인다. 사골에서 뽀얀 국물이 나오기 시작하면 수십 시간 동안 우리고 또 우려낸다.

곰탕 이미지1

나를 설렁탕과 헷갈려 하는 사람이 많은데, 엄연히 다르다. 허영만의 만화 「식객」은 나와 설렁탕의 차이점을 한마디로 정리했다. ‘설렁탕은 뼈 국물이고, 곰탕은 고깃국물이다.’ 뼈를 고아서 만든 것이 설렁탕이고 고기로 국물을 낸 것이 곰탕이기 때문에 설렁탕은 국물이 뽀얗고, 곰탕은 국물이 맑다는 것이다.
뚝배기에 가득 담긴 황금빛 고깃국물. 거기에 밥을 푹 말아서 쫄깃쫄깃한 소고기와 함께 씹는 그 기름진 맛. 오직 곰탕에서만 느낄 수 있는 맛이다. 단백질로 똘똘 뭉친 육수 그 자체는 나의 본질이다. 올겨울에는 곰탕 한 그릇으로 원기를 회복하고 따뜻한 위로를 받아보시길.

뽀얗고 농후한 국물, 설렁탕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진한 소고기 국물 맛을 자랑하는 건 바로 나, 설렁탕이다. 곰탕보다 소뼈를 많이 넣고 오랜 시간 걸쭉하게 끓이기 때문에 골수가 푹 녹아 들어가 국물이 뽀얗게 된다. 그 옛날 개화기 서울 장안 이름난 설렁탕집들은 소를 한 마리 잡으면 소가죽과 오물을 뺀 거의 모든 부위를 큰 가마솥에 함께 넣고 새벽부터 다음날 밤 한 시까지 끓였다. 따라서 자정 무렵부터는 국물이 바짝 졸은 제대로 된 진국을 맛볼 수 있기 때문에 단골들은 항상 이 시간에 설렁탕집을 찾았다고 한다.

곰탕 이미지2

나는 예부터 신이 내린 음식으로 알려진 귀하신 몸이다. ‘설렁탕’이라는 이름 자체가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곳인 ‘선농단(先農檀)’에서 유래됐다고 보는 학자가 많다. 선농단은 농사짓는 법을 가르쳤다고 일컬어지는 고대 중국의 제왕인 신농씨와 후직씨를 주신으로 제사 지내던 곳이다. 조선 시대에는 왕이 세자와 문무백관을 거느리고 소, 돼지를 통째로 잡아 제단에 희생의 제물을 올리고 제사를 지냈다. 
제사를 지낸 후에는 소를 잡아 끓였는데 신에게 바친 신성한 제물이므로 어느 한 군데도 버리지 말고 통째로 끓여야 했다. 이렇게 끓여낸 쇠고기 국을 왕을 비롯하여 선농단에 참례한 문무백관, 인근 마을 백성 모두 함께 나누어 먹었다. 이 귀한 음식이 바로 나, 설렁탕인 것이다. 성종실록에도 성종 6년에 임금이 원산대군과 재상 신숙주 등을 대동하고 선농단에 제사를 지낸 뒤, 백성을 위로하며 함께 음복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설렁탕 이미지2

선농제가 없어진 후, 설렁탕은 민간에 퍼져 나가 서민들의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설렁탕 집을 방문하면 항상 2, 3개의 큰 무쇠솥에 사골 국물이 바글바글 끓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손님이 설렁탕을 청하면 뚝배기에 밥을 담고 뜨거운 국물로 토렴하여 밥을 데운다. 그 다음에 국수 한 사리를 얹고 채반에 놓여 있는 고기를 얹은 뒤 뜨끈뜨끈한 국물을 듬뿍 부어 내준다. 그 위에 곱게 썬 파와 소금·고춧가루·후춧가루 등을 식성에 따라 넣어 먹으면 된다.
뽀얀 국물에 푹 담긴 소면과 밥알을 건져서 새콤한 깍두기나 방금 버무린 겉절이를 하나 얹어 먹으면 세상 부러울 게 없다. 매일 같이 일에 치이고 매서운 동장군에 입맛까지 없어져도, 설렁탕 한 그릇이면 속이 든든해지고 행복해진다. 진정한 소울 푸드는 바로 나, 설렁탕이다.

에디터 정민아 <바앤다이닝> 에디터  사진 한식 아카이브 

 참고 한식 아카이브, 책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음식 백가지」, 「탐식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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