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 읽기 좋은 날
Vol 12. 화려한 미식의 고향, 전라북도
화려한 미식의 고향, 전라북도 ②
향토 미식 로드 _ 울외장아찌
시간이 빚어낸 아삭함 울외장아찌
우리나라 사람에게 장아찌는 일종의 ‘비상 만능 식량’에 가까운 음식이다. 입맛없는 날엔 장아찌 하나로 한 끼를 해결하면 없던 입맛도 살아난다. 별다른 준비 없이도 바로 꺼내 먹을 수 있으며 오랫동안 두고두고 먹을 수도 있으니 밥 위주의 우리 식단에는 참으로 유용하고 간편한 밑반찬이 아닐 수 없다.
어지간한 채소는 다 장아찌 재료가 될 수 있지만, ‘울외장아찌’는 다소 낯설다. ‘울외’는 참외보다 크고 길쭉하며 단맛이 없는 박과 채소. 일본어인 ‘시로 우리(백과)’의 ‘우리’와 참외의 ‘외’를 합쳐 ’울외’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이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울외장아찌는 일제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 음식이다.
당시 일본은 군산에 청주 공장을 여러 개 세웠고, 청주 부산물인 술지게미에 울외를 절여 만든 음식이 바로 울외장아찌였다. 술지게미에 채소를 절여 만든 장아찌를 통틀어 ‘주박장아찌’라고도 부르는데 주박은 술지게미의 다른 말이다.
울외장아찌는 ‘나라즈케’라는 이름으로도 익숙한데, 청주 공장이 많은 일본의 ‘나라’현에서 술지게미를 이용해 만든 ‘즈케(채소 절임)’를 만든 데서 유래한다고. 현재 국내에서 유일하게 청주 공장이 있고 전국 울외 생산량의 70%를 차지하는 군산에서 울외장아찌가 가장 많이 생산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리라. 군산의 많은 울외 농가는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장아찌를 만들고 있는데, 그중 가장 느린 호흡으로 맛을 들이는 곳이 있어 찾아가보았다. 명품 장아찌의 비결은 기다림, 바로 ‘시간’이라고 하는데 과연 그 느림의 맛은 어떤 맛일까 궁금했다.
명품 장아찌의 비결은 기다림, 바로 ‘시간’이라고 하는데
과연 그 느림의 맛은 어떤 맛일까 궁금했다
군산 성산면에 위치한 장아찌 전문 업체 <백년맛찬>의 마당은 넓고 깔끔하다. 늘어선 장아찌 저장 용기들은 크기도 크지만 수도 어마어마해서 그 양을 눈으로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다. 봄에 모종한 울외를 수확하는 시기는 초여름부터 9월까지. 쉽게 무르기 때문에 농부의 손길이 가장 바빠질 때다.
수확한 울외는 길게 반으로 갈라 씨를 걷어낸 후 국산 천일염으로 절인 다음 하루를 기다렸다가 골고루 간이 배도록 뒤집어서 하루를 더 절인다. 그리고 소금기를 씻어내고 다시 꼬박 하루 동안 물기를 뺀다.
꼬들하게 물기가 빠진 울외를 설탕 섞인 술지게미에 켜켜이 채워가며 저장 용기에 담는데 이때 설탕은 울외에 단맛을 더함과 동시에 염분을 빼내는 역할을 한다. 담근 지 두세 달 만에 시판하는 곳도 있지만 여기서는 일년쯤 됐을 때 숙성 중인 울외를 새 술지게미에 다시 재우고 일년 이상 더 기다린다.
기다린 만큼 장아찌의 염도는 낮아지고, 항산화 작용을 하는 폴리페놀 함량은 더욱 증가한다고. 맛이 깊어지고 향은 짙어지면서 식감은 아삭해진다. 비용과 품이 더 들어가지만, 입이 즐겁고 몸에도 좋은 건강한 찬을 만든다는 보람 때문에 이 방식을 포기할 수 없다고 한다.
울외장아찌는 비타민과 미네랄, 식이섬유 등이 풍부한 저열량 식품. 김밥에 단무지 대신 넣거나 시원한 냉국으로 즐기기도 한다. 주먹밥에 넣으면 별다른 재료 없이도 간간하니 맛이 나고, 라면에 반찬으로 곁들여도 깔끔하다.
달곰삼삼하게 적당히 짠맛. 아삭 오도독한 경쾌한 식감. 감칠맛 나는 풍미와 몸에 좋은 영양가. 느림의 맛은 농부의 손끝과 담그는 이의 정성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농부의 마당에는 오늘도 더디게 익어가는 울외장아찌가 밥상에 오를 날만을 기다리고 있다.
달곰삼삼하게 적당히 짠맛. 아삭 오도독한 경쾌한 식감
감칠맛 나는 풍미와 몸에 좋은 영양가
느림의 맛은 농부의 손끝과 담그는 이의 정성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Where to Eat?
백년맛찬
A 전라북도 군산시 성산면 산곡1길 18-1
T 063-453-2215
H 사전 예약 방문
+Tip. 군산의 새로운 별미, 차요테장아찌
최근 군산의 장아찌 제조 농가는 울외 외 다른 채소로 담그는 새로운 장아찌를 속속 개발하고 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차요테장아찌’. 차요테는 참외와 크기, 모양이 비슷한 박과 식물. 멕시코 남부와 중앙아메리카가 원산지인 이 작물을 4년 전부터 군산 농가에서 재배하기 시작했다. 아삭거리는 식감이 울외보다 뛰어나 장아찌, 볶음, 피클, 샐러드 등으로 만들어 먹으며 비타민 C, 엽산, 마그네슘, 칼륨이 풍부하고 고혈압이나 변비, 소화 작용, 피부 미용 등에 효과적이라고 한다.
글 김남희 사진 강현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