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 읽기 좋은 날
2022 해외 우수 한식당 <윤가> 인터뷰
한식과 사람들
이왕 할 것이면 제대로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이 있다. ‘윤가(YUNKE)’의 헤드 셰프, 윤미월 대표가 그렇다. 있는 그대로의 한식을 선보이기 위해 고문헌을 탐독하는가 하면, 한식당을 운영하면서도 꾸준히 김치 클래스를 진행할 정도로 누구보다 한식에 진심이다.
윤 대표가 일본 도쿄에서 운영 중인 ‘윤가’는 문헌을 바탕으로 조선시대 요리를 재현하는 한식 레스토랑이다. 6년 연속 미쉐린 2스타를 획득한 대기록에 이어, 올해 초에는 농림축산식품부와 한식진흥원이 지정한 ‘해외 우수 한식당’에 지정되며 세계에 한식을 알리는 주역으로 인정받았다.
<한식 읽기 좋은 날>이 윤미월 대표를 만나 윤가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도쿄의 명품 거리에서 한식을 외치다
윤가가 위치한 도쿄 긴자 거리는 일본의 대표적인 번화가로 전세계에서 명품 매장이 가장 많이 밀집된 지역으로 손꼽힌다. 윤 대표가 럭셔리 쇼핑 지구에 보란 듯이 한식당을 오픈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하나, 한식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당시 일본에는 스시나 스테이크처럼 비싸도 수긍이 가는 고급스러운 한식 문화가 없었습니다. 한국 요리에도 식재료부터 조리의 모든 과정에 이르기까지 어디에도 뒤쳐지지 않는 고급 한식 문화가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죠.”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일본에서 한식당의 인식은 고깃집이나 가정식을 판매하는 소박한 식당에 그쳤다. 때문에 윤 대표는 한식 문화 전반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했다. 궁중요리부터 사찰음식까지 다양한 코스를 구성해 한식의 다채로움을 구현했고, 음식을 담는 식기에도 한국의 멋을 녹여냈다. 윤 대표는 “고려청자, 조선백자, 방짜유기, 현대식 그릇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식기를 사용하고 있다”며 “식사와 함께 식기 문화의 변천사까지 경험할 수 있는 코스요리를 제공한다”고 소개했다.
갤러리를 닮은 내부에는 한국 작가의 작품 8점이 전시되어 있다. 윤 대표는 “문화는 연결되어 있다는 하나의 컨셉을 바탕으로 우리나라의 얼을 담은 작품을 함께 선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적인 재료와 조리과정이 곧 경쟁력”
윤미월 대표는 한국적인 재료와 조리과정을 바탕으로 한 요리는 그 자체만으로도 독창적이라고 강조한다. 실제로 윤가는 영월 잣, 지리산 오디 소금, 보은 대추 등 국산 식재료를 활용해 우리의 맛을 전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윤 대표는 “한약재 같은 우리 전통 식재료가 맛의 중심이 되는 동시에 손님들이 맛있게 느낄 수 있도록 신경을 많이 쓴다”고 덧붙였다.
일식과 차별화된 한식만의 특징과 매력에 대해서는 “한식과 일식은 맛의 기본이 되는 육수를 사용하는 방식이나 채소를 버무려 먹는 양념도 많이 다르다”며, “한식은 다양한 재료로 양념을 만들고 숙성해 깊은 맛을 낸다는 점에서 전 세계 어떤 음식과 비교해도 뒤쳐지지 않는다”라고 전했다.
‘제대로 된 한식’을 위한 깊이 있는 연구에도 여념이 없다. 윤 대표는 “이미 있었던 한국의 요리들을 연구하고 재현하는 일을 누군가는 해야 한다고 느꼈다“며 “한국의 요리문화가 어떻게 진화되어 왔는지 알리는 것이 한식을 세계에 뿌리 내릴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익숙함에 속아 한식의 정수를 잃지 않도록, 공부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녀의 철학이다.
김치 없이는 못 살아, 윤가의 남다른 김치 사랑
윤미월 대표의 인생에서 김치를 빼놓을 수는 없다. 그는 고(古)조리서 ‘시의전서’에 기록된 배추김치의 원형인 ‘숭침채’를 3대에 걸쳐 전승해 오고 있는 대한민국 식품명인이다. 윤 대표는 “숭침채가 단순히 책 속에 머물러 있는 역사가 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며 “식당의 서비스 부분에 있어서도 김치의 역사적 배경과 맛을 자세히 전달해 드리고 있다”고 말했다.
숭침채는 일본의 홈쇼핑과 인터넷 쇼핑몰을 통해 판매되고 있다. 낙지, 전복 등 건강한 재료들이 가득 들어가 시판 김치 중에서도 저렴한 편은 아니지만 누적판매 3만개를 달성할 정도로 꾸준히 판매되고 있다. “우리나라 고유 음식인 김치의 역사를 담은 숭침채를 판매함으로써 한국 김치의 우수성을 지속적으로 알리고자 한다”고 전했다.
김치를 적극적으로 알리기 위해 김치 교실도 소규모로 진행하고 있다. 윤 대표는 김치 교실을 진행할 때면 한식에 대한 높은 관심을 더욱 실감한다고 말했다. “학생들을 만나 보면, 때로는 한국인보다 더 한국문화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느껴요. 우리 문화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한식, 트렌디한 문화로 일본에 자리잡다
일본에서 한식에 대한 인식은 어떻게 변화하고 있을까. 윤미월 대표는 한식이 하나의 문화이자 요리 장르로 뿌리 깊게 자리를 잡았다고 말한다.
‘대장금’, ‘겨울연가’ 등 2000년대 초반 한류 열풍을 몰고 왔던 K-드라마 시청자들이 30대가 되어 주 소비층으로 거듭났고, 10대와 20대는 각종 SNS를 통해 한국의 문화를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접하고 있다. 윤 대표는 “젊은 세대 사이에서 한국의 문화가 ‘오샤레(멋진, 트렌디한) 문화로 인식되고 있다”고 생각을 전했다.
상대적으로 인터넷에 익숙하지 않은 50대 이상의 일본인들에게도 한식은 익숙한 편이다. 윤 대표는 “아직 중장년층에게는 한식이 불고기나 빨갛고 매운 음식 정도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며 “이런 부분들을 개선하기 위해 더욱 다양한 한식을 선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대표는 우리 나물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구절판, 신선로, 한방 전복찜 등 메뉴도 반응이 좋지만, 오히려 산나물에 대한 관심도가 높다”며 “비건 메뉴의 수요가 늘어남에 따라 해외 고객들이 나물을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좋은 요리로 여기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러한 변화를 보면 뿌듯하기도 하고, 앞으로 한식을 어떤 형태로 알리면 좋을지 더욱 고민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한식을 잘 모르는 한식당”
윤가를 한 문장으로 소개해 달라는 질문에, 윤 대표는 ‘아직은 한식을 잘 모르는 식당’이라고 답했다.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한식만을 바라보고 달려왔음에도 배움의 자리에 늘 지키는 그녀다운 겸손한 답변이다.
윤 대표는 “한식이 익숙하다는 이유로 더 깊이 알아보려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윤가는 아직 잘 모른다는 마음으로 항상 공부하면서 한식을 만들고자 한다”고 말했다.
윤 대표의 다음 목표는 전 세계에 윤가를 오픈하고 세계인에게 한식과 한국의 요리 문화를 전파하는 것이다. 한식에 한결같은 그녀의 진심이 세계에 통할 날을 기대해 본다.
위치 │ 104-0061 Tokyo, Chuo City, Ginza, 6 Chome−13−9 GIRAC GINZA 11F
영업시간 │ 월요일-토요일 (5:00PM – 10:00PM) / 일요일 휴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