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 읽기 좋은 날
노화를 늦추는 식사법, 저속노화 식단과 한식
맛있는 큐레이션
불로초를 찾던 진시황, 젊음을 유지하려 애썼던 클레오파트라처럼 인류는 오래전부터 노화를 피하려는 욕구를 지녀왔다. 그리고 지금, 그 욕구는 ‘저속노화’라는 이름으로 다시금 피어오르고 있다. 한때는 미용 업계에 국한되었던 이 개념이 이제는 식문화 전반을 이끄는 주요 화두로 영역을 확장했다. 고가의 시술이나 특별한 식이요법이 아닌, 일상적인 식사만으로 건강을 유지하고 노화를 늦출 수 있는 일명 ‘저속노화 식단’ 트렌드와 그 중심에서 빛을 발하는 한식의 가능성을 엿본다.
모두가 열광하는 젊은 식생활로의 전환

‘저속노화’는 2010년대 중반, 미국 실리콘밸리의 바이오 기업들이 수명 연장을 모색하는 연구를 진행하면서 처음 등장한 개념이다. 과거의 ‘안티에이징(Anti-Aging)’이 외모 중심의 미용 관리에 집중됐다면, 저속노화는 식습관, 운동, 수면, 스트레스 관리 등 일상의 선택을 통해 보다 근본적으로 노화 속도를 늦추려는 접근법이다.
저속노화의 여러 분야 중에서도 ‘저속노화 식단’이 국내에서 인기를 얻기 시작한 것은 2024년 하반기, SNS를 통해 관련 글이 퍼져나가면서부터다. 핵심 내용은 식습관의 변화만으로도 노화를 늦출 수 있다는 것. 흰쌀밥 대신 잡곡밥 섭취, 식용유 대신 올리브유 사용, 당류와 정제 탄수화물 및 초가공 식품 줄이기 등이 대표적인 예다. 이를 통해 체중을 조절하고, 성인병의 위험을 낮춰 결과적으로 건강을 오래 유지하는 것이 저속노화 식단의 최대 기대효과다.

노년층과 중장년층은 물론 건강에 관심이 많은 MZ 세대에게서도 저속노화 식단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엄청난 시간이나 비용, 의지 없이도 누구나 일상에서 쉽게 도전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성비 건강관리법’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새로운 식문화가 나타남에 따라 식품업계에서도 눈에 띄는 변화가 생겨나는 추세다. 실제로 ‘배달의민족’의 조사에 따르면 ‘저속노화’, ‘면역’, ‘항산화’를 콘셉트로 내세운 음식점 수는 2021년 약 8,300곳에서 2025년 1월 기준 약 2만 4,500곳으로, 4년 동안 3배 가까이 늘었다. SNS 상에서도 ‘저속노화 식단’ 해시태그를 단 다양한 레시피와 식단 인증 게시글이 수만 건에 이른다.
알고 보면 가장 오래된 저속노화 식단, 한식
흥미로운 점은 지금 유행하는 저속노화 식단의 주요 효과가 이미 전통 한식에 내재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예컨대 된장, 청국장, 김치 같은 발효식품은 장 건강과 면역력 강화에 뛰어나며, 나물, 해조류, 잡곡 등은 천연 항산화 성분인 폴리페놀과 베타카로틴이 풍부해 노화를 늦추는 데 탁월하다.
특히 한식은 노화의 주범으로 꼽히는 ‘혈당 스파이크’를 예방하는 데에도 유리하다. 나물과 채소 등 식이섬유가 풍부한 식재료를 주로 활용해 쉽게 포만감을 주고, 식사량을 줄이는 데 도움을 주며, 탄수화물 흡수 속도를 천천히 진행시켜 혈당 스파이크를 방지한다. 즉, 저속노화를 위한 건강한 식단으로 한식이 이미 기능하고 있었던 셈이다.
한식의 조리 방식 또한 저속노화 식단으로서의 가치를 더욱 부각시킨다. 시간과 정성을 들여 숙성하고 발효시키는 장류나 김치 등은 식재료의 본래 영양소를 극대화하고, 장내 미생물의 다양성을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더불어 빠르게 조리하고 소비하는 자극적인 현대 식문화 속에서 오랜 숙성과 정성이 들어간 한식의 조리 과정은 오히려 느리고 건강한 저속노화 식단의 방향성과 맞닿아 있다.
저속노화 식단으로 한식의 잠재력이 주목받으면서 일상에서 한식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려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아침으로는 혈당지수가 낮은 ‘두부 잡채’와 탄수화물 비중이 적은 ‘보리 비빔밥’, 점심으로는 단백질과 오메가-3가 풍부한 ‘꽁치 마늘구이’, 저녁으로는 단백질과 항산화 성분이 가득한 ‘소불고기 버섯볶음’ 등 매 끼니에 적합한 레시피를 기반으로 다양한 한식이 저속노화 식단으로 재해석되고 있다.
느리고, 또 건강한 노화를 위하여
노화는 자연스러운 순리지만 그 속도를 조절하는 것은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저속노화 식단은 삶의 속도는 늦추고 질은 높이는 효과적인 도구가 될 수 있으며, 한식은 이미 오래전부터 그 해답을 품고 있었다. 이제는 전통의 맛과 지혜에 현대적 가치관을 더해 ‘맛있게, 오래’ 사는 방법을 추구해야 할 때다. 느리고 건강하게 나이 드는 식탁, 그 위에는 우리의 한식이 있다.
참고문헌
<저속노화 식사법, 정희원, 테이스트북스, 2024>, <느리게 나이 드는 습관, 정희원, 한빛라이프, 2023>, 배달의민족 <2025외식업트렌드 Vol.1 저속노화>, 서울경제 <'마라탕후루' 찾던 MZ 갑자기 왜…젊은층 빠진 '저속노화식단'은 무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