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 읽기 좋은 날
2022년 해외 우수 한식당 <순 그릴 마레> 인터뷰
한식과 사람들
모두가 둘러앉은 식탁 위 불판에서 지글거리는 고기의 모양새는 한국 고깃집의 상징과도 같다. 주방이 아닌 식사 자리에 불판을 올리는 상차림은 우리나라가 아니면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 이 한국식 구이 문화를 품격 있게 선보이며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는 '핫한' 한식당이 있다. 프랑스 파리 마레 지구에 위치한 한식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순 그릴 마레(Soon Grill Marais)' 이야기다.
<한식 읽기 좋은 날>이 순 그릴 마레를 운영하고 있는 한성학 대표를 만났다.
무대를 연출하듯 그려 낸 한식당
연극배우, 연출가, 그리고 예술가. 한성학 대표의 남다른 이력이다. 한국에서 연극영화과를 졸업한 한 대표는 독일 베를린에서 극단 배우로 활동하며 문화예술에 대한 꿈을 키워 나갔다. '마임(무언극)'을 배우기 위해 프랑스 파리로 왔지만, 운명은 그를 연극 무대가 아닌 요식업계라는 새로운 무대로 인도했다.
"갑작스럽게 2세가 생겨 예술가의 삶을 접고 자영업자의 길을 걷게 되었지만, 베를린에서 한국 전통 문화를 소재로 공연을 했던 경험을 살려 무대를 연출하듯 저만의 세계를 레스토랑에 구현하고자 했습니다. 순 그릴 마레점은 그 첫 번째 무대였죠."
2010년대 초반만 해도 파리 시내 한식당 대다수는 한국인 관광객을 주 고객으로 하는 '밥집'에 그쳤기에 한성학 대표는 어떻게 하면 프랑스 현지인들의 발길을 한식당으로 모을 수 있을지 고민했다. 그는 "전통을 고수하면서도 아름답게 꾸며진 것을 더 좋아하는 현지인의 선호도에 맞춰 음식의 미적인 부분을 강화했다"며 "순 그릴 마레점은 파리에서 가장 한국적이면서 최고의 맛과 멋을 즐길 수 있는 한식 레스토랑을 만들겠다는 포부가 담겨 있다"고 밝혔다.
무대를 연출했던 세심한 감각은 순 그릴의 매력적인 인테리어 곳곳에서 드러난다. 특히, 공중에 매달린 달항아리 백자 장식은 방문객은 물론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길까지 사로잡는 순 그릴 마레의 트레이드 마크다. 한성학 대표는 "달항아리, 전통 탈, 개울가를 연상시키는 세면대 등 매장 내부 곳곳에 한국적인 미를 더했고, 모든 식기류도 전통 유기를 사용해 한국의 멋을 알리고자 했다"고 전했다. 2020년 초에 샹젤리제에 오픈한 순 그릴 2호점 역시 한국의 전통 무용인 '승무'를 형상화한 인테리어 장식으로 방문객들의 눈과 입을 즐겁게 하고 있다.
"한국식 그릴 레스토랑, 마레의 성지가 되다"
여러가지 한식 요리 중 구이를 메인으로 선택한 이유를 물었다. 한성학 대표는 한국식 구이와 우리나라 공동체 문화의 연관성을 꼽았다. 그는 "외국에서도 바비큐를 많이 하지만, 식탁 한가운데에 그릴을 놓고 먹는 한국식 그릴은 우리의 전통과 공동체 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가족들 또는 친구들과 특별한 날에 모여 기쁨과 슬픔을 나누는 한국만의 식문화를 알리고 싶었다"고 밝혔다. 이어 "한국식 그릴이 익숙하지 않을 현지인들을 위해 직원들이 직접 고기를 구워 주고, 한국에 쌈에 대해 설명을 해주며 한식 문화를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고 전했다.
구이 뿐만이 아니다. 비빔밥, 잡채 등 다양한 한식을 고급스럽게 선보이는 데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한 대표는 "순 그릴에서 판매하고 있는 메뉴는 하나도 빼 놓지 못할 만큼 모두 인기가 많지만, 그릴 메뉴 외에도 파전, 새우강정, 비빔밥, 잡채 등이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고 덧붙였다.
정통 한식의 고급화 전략은 성공적이었다. 유명 연예인과 여러 미식가의 방문이 이어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순 그릴은 마레 지구에서 가장 인기 있는 '미식의 성지'로 입소문을 탔다. 이처럼 한식과 한식의 식문화를 세계에 알린 공로를 인정받아 올해 초에는 농림축산식품부와 한식진흥원에서 선정한 '2022년 해외 우수 한식당'에도 이름을 올렸다. 한성학 대표는 "철저한 식재료와 위생 관리, 그리고 모두의 결속력으로 제공하는 질 좋은 서비스가 해외 우수 한식당으로 선정될 수 있었던 경쟁력"이라고 말했다.
한식과 현지 주류의 페어링은 순 그릴 마레의 또다른 매력 포인트다. 순 그릴 마레에는 여러 와이너리를 직접 방문하며 업체를 선정하는 한국인 와인 전문가가 상주하고 있다. 한성학 대표는 "한국 전통주 소믈리에 자격증이 있는 한국인 소믈리에를 고용해 한국 음식에 맞는 와인 리스트를 선보이고 있다"며 "우리 음식을 가장 잘 알고 이해하는 한국인 전문가 덕분에 된장이나 간장 등 전통 양념이 가미된 음식들과 어울리는 와인도 선별할 수 있게 되었다"고 자랑했다.
유럽을 사로잡은 한식의 인기
한성학 대표가 보는 유럽 시장 내 한식의 현재와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그는 "한국 음식을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프랑스인도 식당에 오면 비빔밥, 김치 등 기본적인 음식 이름을 다 알고 있다"며 "한식 경험이 없어도 한국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고 호기심에 왔다가 맛있어서 계속 오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이어 "유럽 전역에서 한식이 유행이라고 할 수 있다"며 "이 유행이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고, 그 후로는 한식이 유럽 사람들의 식문화에 자연스럽게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 같다"고 의견을 전했다.
한 대표는 프랑스의 중상류층 사이에서도 한식이 인기라는 점을 언급했다. "프랑스에는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옷을 잘 차려 입고 품격 있는 레스토랑에 가는 문화가 있는데, 이럴 때 한식당을 찾는다는 점이 매우 고무적"이라고 말했다. 이어 "한식당을 통해 한국의 우수한 식문화를 알릴 수 있어 큰 보람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한식의 확장을 꿈꾸다"
순 그릴은 마레점과 샹젤리제 지점 모두 현지인의 호평을 받으며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다. 한성학 대표의 다음 목표에 대해 묻자 "해외 우수 한식당으로서 유럽 대륙의 한식 시장을 선도하고 싶다"며 "순 그릴과 같은 파인다이닝 한식당을 베를린에 오픈하기 위해 계획하고 있다"고 답했다.
파인다이닝 뿐만 아니라 보다 친근하게 한식을 접할 수 있게끔 하는 사업도 구상 중이다. 한성학 대표는 "한식 프랜차이즈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예정"이라며 "프랑스 전역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김밥, 비빔밥 등의 간편한 한국 음식을 판매하는 것을 생각하고 있다"고 계획을 밝혔다.
순 그릴 마레 (Soon Grill Marais)
위치 │ 78 Rue des Tournelles, 75003 Paris, France
영업시간 │ 연중무휴 (12:00PM – 2:30PM, 7:00PM-10:30P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