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 읽기 좋은 날
Vol 2. 한식의 맛, 장문화로 지켜내다
옹기 채로 훔쳐간다는 씨간장, 씨간장이 뭐길래?
유현수 (한식당 두레유 셰프)
"살아 숨 쉬는 한국의 맛 간장"
<한국 전통요리의 꽃, 간장>
한국 음식에서 맛을 내는 가장 기본적인 양념은 간장이다.
간장은 발효과학의 결정체이자 요리의 맛을 살려주는 양념이기도 하면서 그 자체로도 하나의 완전한 음식이다. 오늘날에는 전 세계 수백 가지의 다양한 양념들로 다채로운 맛을 내지만, 예전에는 간장이나 된장만으로 대부분의 요리에 간을 하였다. 간장이 식재료의 맛을 살리고 때로는 식재료가 간장의 맛을 살리기도 하는 상호보완의 역할을 한 것이다.
<간장의 오랜 역사>
간장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은 조선시대부터지만 간장의 기원에 대해서는 삼국사기에도 언급이 된다고 하니 그 역사를 짐작케 한다.
<간장의 꽃, 씨간장>
오랜 세월 동안 한국 간장의 맛이 이어져 내려온 비결은 바로 ‘씨간장’이다. 씨간장은 말 그대로 씨가 되는 간장이다. 간장은 발효식품이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서 맛이 변하게 되는데 좋은 환경에서 오래 묵힐수록 깊은 발효의 맛이 강해지고 염도는 상대적으로 낮아지게 된다. 특히 이렇게 만들어진 씨간장의 맛은 단순히 몇 마디 단어로 표현하기 힘들만큼 깊은 풍미와 특유의 감칠맛을 선사한다. 보통 장독대에서 간장을 길러다가 요리에 사용하게 되는데, 간장을 퍼서 쓰면 양이 줄기도 하거니와 시간이 지나면서 간장의 수분이 증발하여 양이 줄기 마련이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오래된 간장은 마치 소금 결정과 같은 모양으로 굳어버리는데 이렇게 발효된 간장에 새로 담근 간장을 붓는 것을 ‘겹장’이라고 한다. 우리가 요구르트나 빵 반죽을 만들 때 인위적으로 발효균을 넣어 발효를 촉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오래 묵은 간장과 햇간장을 섞으면 마치 와인을 블랜딩 하는것 처럼 그 맛이 한층 깊어진다. 이렇게 겹장을 계속하다보면 간장의 맛이 자연스럽게 깊어지고 오리지널에 가까운 맛을 유지 할 수 있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수분이 증발하여 소금 결정 모양으로 굳은 간장의 모습>
<우리간장 지키기, 코스의 시작을 씨간장의 향긋한 아로마로>
한국의 맛에 있어서 간장이 차지하는 비중이 중요하기 때문에 필자 역시 간장 맛을 지키기 위해서 많은 정성을 기울인다. 필자의 한옥 레스토랑 두레유에는 장독대가 있어서 맛을 내는 기본 장은 직접 만들어 쓰는데, 예전부터 간직해오던 7년 묵은 씨간장이 두레유의 보물 1호이다. 두레유에서는 코스의 시작을 알리는 아뮤즈 부쉬(*보통 서양의 코스에서 처음 내는 음식으로 입맛을 북돋는 음식)를 특이하게도 씨간장으로 하는데,
<7년 묵은 씨간장으로 입맛을 돋구는 한식당 두레유>
한국의 밥상문화 중에 어르신들이 상 위에 올라온 간장을 한 수저 찍어 드시고 식사를 시작한 것에서 착안한 것이다. 간장은 입맛을 돋우는데 좋고, 소화를 돕는 역할도 하기에 한식코스에서 최고의 아뮤즈 부쉬라고 자부한다. 특히나 외국 사람들이 생소한 한국 간장의 맛과 향을 좋아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는데, 그들이 한국의 장맛을 기억하고 다른 나라에 가서 한국을 맛을 설명하고 이야기 할 것을 생각하면 뿌듯하다.
<숨쉬는 옹기와 간장의 궁합, 전통간장 보관법>
간장은 살아 숨 쉬는 발효음식이기 때문에 관리하고 보관하는 방법이 중요한데, 한국의 장문화가 발전할 수 있었던 큰 요인 중에 하나는 바로 옹기이다.
아래의 그림은 19세기말 김준근(金俊根)의 작품인 ‘옹기행상’이라는 작품이다. 옹기를 숨쉬게 해주는 ‘기공’은 간장이 발효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발효환경을 만들어 주어 간장의 저장성을 증가시키고 수 년 동안 함께 발효하며 간장의 맛과 값어치를 증가시킨다. 이 때문에 좋은 옹기에서 발효시키는 것이 중요하고 더욱이 옹기의 자리를 옮기지 않는 것이 좋은 간장을 만들어내는 비결이다.
[출처] 김준근(金俊根), 19세기 말, 종이에 수묵, 27.2×19.7cm, 서울역사박물관
한식 아카이브 속 기록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1766)에서는 장에 대하여 “장(醬)은 장(將)이다. 모든 맛의 으뜸이다. 인가의 장맛이 좋지 않으면 비록 좋은 채소나 맛있는 고기가 있어도 좋은 요리가 될 수 없다. 촌야(村野) 사람들이 고기를 쉽게 얻지 못하여도 여러 좋은 장이 있으면 아무런 반찬 걱정이 없다. 가장은 모름지기 침장에 뜻을 두고 오랫동안 묵혀 좋은 장을 얻도록 해야 할 것이다. ”라고 하였다. 그러니까 장에는 여러 좋은 장이 있어 반찬 걱정할 필요가 없다 했으니, 이는 기본적인 된장·간장 외에 즙장·청국장을 포함하여 장에 더덕·도라지·게·새우·생강·고기·두부를 박거나 별도로 만든 소두장(小豆醬;팥장)·달걀장·적장(炙醬)·병장(餠醬)·천리장(千里醬) 등을 가리키는 것이다. 물론 이들 장마다 모두 개별적인 항아리·독·단지가 그 양의 많고 적음에 따라 필요하므로, 장을 저장하기 위해 가정에서는 많은 수의 옹기가 필요하였다...
한식 아카이브 옛 그림속 한식「옹기행상」 中
<전통간장, 별미로 즐기기>
오래된 씨간장이 항암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는 이야기에 웃돈을 주고 씨간장을 구입하거나 옹기채로 도둑질해가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로 잘 발효된 씨간장은 몸에도 이롭다고 한다.
전통간장을 즐기는 방식은 다양한데 한 가지 예로 차로 즐기는 방법이다. 중국의 대표 발효차인 보이차는 특유의 깊은 맛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데 오랜 세월 발효가 된 간장에 따뜻한 물을 부으면 간장의 풍미가 증가하고 짠맛이 줄어들기 때문에 훌륭한 차로 즐길 수 있다.
마치 와인을 오픈 했을 때 산소와 만나면서 와인의 깊은 맛이 깨어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특히 스님들은 소화가 안 되거나 속이 안 좋을 때 간장차로 속을 다스리기도 한다고 하니 간장이 천연 소화제 역할을 하는 것이다.
<한식의 맛, 장문화로 지키자>
간장은 한국적인 맛의 중심이자 기준이다. 장맛으로 그 집 음식의 기본을 말하듯 간장이 가지고 있는 상징성은 크다. 집에서 식사 할 시간도 없이 바쁘게 사는 오늘날의 한국인들에게 간장을 담가 먹으라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한 이야기일 것이다. 그렇지만 적어도 맛있는 간장의 기준이나 오래된 씨간장의 맛과 같은 우리 간장의 맛을 기억하고 후손에게도 보존하여 전달 할 수 있도록 간장을 아끼고 사랑해주기를 바란다. 간장의 맛을 지키는 것이 한국의 맛을 지키는 것임을 잊지 말자.
유현수 (한식당 두레유 셰프)
현재 두레유 오너셰프로 한국 슬로푸드협회 정책위원과 주영한국대사관 총괄셰프로 활동한 경력이 있다. 혁신리더/한식요리부문에서 베스트 이노베이션 기업&브랜드 대상을 수상하였으며 2012년 런던올림픽 주영한국대사관 오찬 및 만찬 총괄을 맡았고, 2016년 미슐랭가이드 1스타로 선정되었다. 최근 JTBC ‘냉장고를 부탁해’ 와 EBS 다큐프라임 ‘한국음식을 말하다’ 등의 방송프로그램에도 출연하였던 대한민국의 대표 셰프 중 한 명이다.
이 글은 필자의 의견으로, <한식진흥원> 의 의견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