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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식 읽기 좋은 날

2017
93

Vol 4. 가을과 겨울사이, 조선시대 회식자리 훔쳐보기

날 것으로 즐기는 조선의 회 사랑

황광해 (음식평론가)

2023/11/1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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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으로 버무린 회

 ‘금제작회(金虀斫膾)’는 로맨틱하다. ‘금빛으로 버무린 회’라는 뜻이다. 그것은 조선시대 기록 군데군데 나타난다. 조금씩 표현이 다르다.  횟감은 농어[鱸魚, 노어]고 계절은 늦가을 서리가 내린 후다. ‘서리가 내린 후 석자 미만의 농어’가 횟감이라고 못 박았다. ‘제(虀)’는 채소나 생선, 고기 등에 식초 등을 넣고 버무린 초절임이다. 가을 국화꽃잎과 잘게 썬 귤, 여뀌 등을 곁들인다. ‘작회’는 가늘게 채 썬 회를 말한다.

 “논어” ‘향당’ 편 
“(공자께서는)정하게 지은 밥을 싫어하지 아니하셨고, 가늘게 썬 회를 싫어하지 아니하셨다”고 했다. 정하게 지은 밥이나 가늘게 썬 회가 최고다. 그러나 구복口腹을 위하여 굳이 정한 밥과 가늘게 썬 회를 찾지는 않았다는 뜻이다.  

순갱노회, 고향을 그리워하다

 금제작회와 더불어 농어회는 조선시대 선비들의 로망이었다. 
 농어회는 중국 진晉나라에서 벼슬살이를 하던 장한의 ‘순갱노회’에서 시작되었다. 장한은, 가을바람이 불자, 어느 날 문득 “고향의 순채국[蓴羹, 순갱]과 농어회가 그립다”며 고향 강동 오군江東 吳郡으로 돌아갔다. 장한이 살얼음판 같은 정치판에서 스스로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갔다는 뒷이야기도 있지만 조선의 선비들은 ‘순갱노회’를 이루지 못할 꿈, 판타지로 여겼다. 

 조선 중기 문신 계곡 장유(1587-1638년) 역시 순갱노회를 노래한다. 
-
외로운 학 울음소리에 나그네 꿈 깨고 보니,
주방에서 큰 농어로 회를 뜬다네.
평생토록 장한의 흥취를 그리워했으니
지금 곧장 노 저어 동오로 갈거나.

-
 장한의 정취가 어린, 동오의 농어회가 바로 순갱노회다.

 ‘다산(1762-1836년)의 농어회’는 얼마쯤 절박하고, 얼마쯤 코믹하다. 
 1830년 무렵, 다산은 긴 귀양살이를 끝내고 고향인 마재[馬峴, 마현]에 돌아와 있었다. “다산시문선”에는 “영명위 홍현주(1793-1865년)가 농어를 보기 위하여 마현에 왔다”고 했다. 홍현주는 정조대왕의 딸 숙선옹주의 남편이다. 전 국왕의 사위이자 현 국왕의 매제다. 게다가 숙선옹주는 순조와 사이도 좋았다. 이런 ‘거물’이 단순히 농어회를 먹으러 머나먼 마재까지 온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어쨌든 겉으로는 농어를 보기 위하여 왔다. 
 오는 날이 장날이다. 하필이면 이날 농어가 잡히지 않아 애태우는 모습을 다산은 시에서 그렸다. ‘눈먼 농어가 한 마리 잡혀 겨우 체면은 구기지 않았다’고 했다. 당시에도 모임 자리를 만들 때 “농어회나 한 점 하시면서 이야기나 나누지요”라는 코멘트가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농어회와 금제작회는 고려시대 기록에도 나타난다. 
 고려 말기 문신 가정 이곡(1298-1351년)은 목은 이색의 아버지다. 목은과 마찬가지로 가정 역시 음식에 대한 기록을 많이 남겼다. 

늦은 식사에 나물국만 해도 맛 좋은데
동정향(귤)을 나눠준다니 깜짝 놀랄 일
안개 낀 강의 옥 같은 회[玉膾]는 구할 길 없어도
이따금 금제(金虀)를 대하면 흥을 가누지 못한다네.

 이 시의 동정향(귤), 옥 같은 회, 금제 등을 엮으면 금제작회가 된다. 금제작회는 ‘금제옥회金虀玉膾’라고도 불렀다. 옥회는 옥처럼 뽀얗다는 뜻. 회를 썰면 마치 은실[銀絲] 같이 가늘고 뽀얗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다.

옥담 이응희, 서해안을 담다

 “옥담사집”에도 농어회는 등장한다.  

우리 해동으로 언제 들어왔던가
작은 비늘 은빛보다 희고
두툼한 살 옥빛 같아라
회로 준비해서 귀한 손님 대접하고
탕으로는 늙은이 배를 불린다
누가 이 맛을 능히 알리오
그 옛날 장공을 생각할 뿐

 송강은 중국 지명이다. ‘장공’은 진나라 장한이다. 시 제목은 ‘농어’다. 역시 장한의 ‘순갱노회’를 노래했음을 알 수 있다. 

 옥담 이응희(1579-1651년)는 성종대왕의 후손으로 왕실 종친이다. 광해군 시절 대과 초시에 합격했지만 벼슬길을 접고, 경기도 산본 수리산 기슭 향촌에서 선비로 살면서 서민의 삶을 직접 겪었다. 옥담은 서해안 가까운 향촌의 풍경, 풍습을 시로 남겼다. 당연히 ‘서해안에서 생산되는 생선, 생선회’의 이야기도 많이 남아 있다.  

“조선시대 서민들은 어떤 회를 먹었을까?” 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도 옥담의 시에서 얻을 수 있다. 생선회에 관한 한, 내륙의 궁궐보다 바닷가 서민들이 더 자유로웠다. 냉장, 냉동 시설이 없던 시절이다. 싱싱한 생선, 횟감은 바닷가 가까이 있는 이들의 몫이었다. 

밴댕이가 시장에 가득 나와
하얀 눈이 촌락을 덮었네
상추쌈을 싸면 맛이 으뜸이고
보리밥에 먹어도 맛이 좋아라

밴댕이 회 미지

 

 옥담 이응희의 “옥담사집_만물편” 중 ‘밴댕이[蘇魚, 소어]’ 부분이다. 밴댕이를 회로 먹었고 상추쌈에 싸먹었음을 알 수 있다. 
 계곡 장유는 “홀연히 생각나는 금강의 별미/금제작회에 여린 싹의 붉은 빛이라니”라고 했다. 붉고도 여린 싹은 아마도 여뀌였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조선시대에는 회를 먹을 때 여뀌를 곁들이는 경우가 많았다. 

 옥담은 조선중기 서민들이 여러 생선회를 먹었음을 보여준다.

 은어(銀魚)를 두고,

쟁반에 은빛이 반짝이고
도마에 백설 빛이 휘날린다
-
하고,  준치[眞魚]는 
-
솥에 넣어 탕으로 끓여도 좋고
회를 쳐서 쟁반에 올려도 좋다
-
고 했다. 그 외에도 숭어, 쏘가리, 위어 등이 횟감으로 좋다고 적었다.

위어葦魚는 웅어熊漁라고도 한다.
예나 지금이나 강화도, 행주산성 일대와 서해안에서 많이 잡혔다. 궁중에서는 한양도성과 가까운 행주산성, 경기 서해안에 위어소葦魚所를 설치하고 위어를 구했다. 위어를 ‘왕이 회로 먹던 생선’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그러나 위어를 왕만 먹었던 것은 아니다. ‘왕에게 진상한 물고기’로 부르는 것도 정확치는 않다. 명태, 조기부터 전복과 밴댕이까지 왕에게 진상하지 않았던 생선은 없다. 위어는, 왕도 먹고 선비 옥담 이응희도 먹고, 옥담과 더불어 살았던 서민들도 먹었다. 중종 때는 위어 잡이 권리를 두고 중신 박원종의 아내와 왕실이 다툼을 벌인 일도 있었다. 금제작회처럼 귀하게 여기는 것도 있었지만 조선시대에는 대부분이 생선회를 즐겼다.

한반도가 즐긴 회膾

 오늘날 우리는 활어회를 즐긴다. 일본은 선어회가 주류다. 한국과 일본의 회 문화는 다르다. 일본은 생선 본연의 맛을 추구하지만 한국식 회는 ‘상추쌈에 회, 밥, 장醬을 얹고 입이 미어터지게 밀어 넣는 식’이다.  
 ‘회膾’는 ‘고기 육肉+모을 회會’다. 회의 원형은 생선이 아니라 날고기다. 고대에는 모든 민족이 생선, 고기 등을 날 것으로 먹었을 터이다. 조선 사대부들이 중국의 회를 언급한 것은 당시 선진국이었던 그들의 문물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정작 중국의 생선회는 명나라 무렵 사라진다. 한반도에서는 향촌의 서민들도 여러 종류의 생선을 회로 먹었다.    

음식평론가 황광해 이미지

황광해 (음식평론가)

연세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여 경향신문사, 서울문화사 기자 및 편집장을 맡았다. 동아일보‘황광해의 역사속 한식’‘황광해의 우리가 몰랐던 한식’‘역사 속 한식이야기’, 현재는 주간한국 ‘이야기가 있는 맛집’ 등 한식과 관련한 다양한 칼럼들을 연재 중이다. 저서로는 [한국의 맛집 579], [줄서는 맛집],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오래된 맛집] 등이 있다. “착한 식당” 검증위원으로 활동했으며 전국 곳곳의 맛집 열 바퀴쯤은 돌며 음식 평론 글들로 독자들과 소통하고 있다.

이 글은 필자의 의견으로, <한식진흥원> 의 의견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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