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밥에서 컵밥까지, 한국 길거리 음식 연대기

길거리 음식의 역사는 조선의 봇짐장수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5세기 말 행상들이 모여 장을 펼쳤던 장시를 시작으로, 18세기 중반에는 약 천 개의 오일장이 성행했다. 행상들은 여러 장을 오가며 물건을 팔았고, 이때 숙박과 밥을 제공하던 객주가 밥집의 역할을 하며 도로변에는 주막촌을 형성했다. 이것이 길거리 음식 문화의 초기 형태가 되었다. 

객줏집과 주막에서는 설렁탕이나 장국밥과 같은 국밥을 주로 팔았는데, 이는 당시 궁중의 의례 강화로 육류와 부산물이 풍부했기 때문이다. 길거리 음식은 결국 시대상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서울 무교동의 무교탕반은 유명세가 높았는데, 조선 24대 왕 헌종이 수라에 올랐던 장국밥을 잊지 못해 신분을 감추고 직접 무교동으로 행차할 정도였다. 국밥 외에도 국수, 떡볶이, 만두, 빈대떡 등 다양한 길거리 음식이 이 시기에 시작됐다.

한국전쟁 이후 시장에서 저렴하고 간편한 음식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떡볶이, 순대, 튀김 등 분식류가 본격적으로 대중화되었고, 붕어빵, 호두과자, 호떡 같은 간식류도 인기를 끌었다. 밤에는 술 한 잔 기울이며 하루의 회포를 풀 수 있는 포장마차가 사람들에게 위로가 돼 주었다. 지역마다 특산물을 중심으로 발달한 시장과 포장마차의 음식들은 영화나 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며 외국인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2000년대 이후에는 퓨전 길거리 음식과 창의적인 메뉴들이 개발되어 한국만의 독특한 길거리 음식 문화를 형성했다. 한식에 다양한 요소를 접목한 회오리 감자, 한국식 핫도그, 길거리 토스트 등이 개발됐고, 학원가를 중심으로 저렴하고 빠르게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컵밥’ 등이 탄생했다.

귀한 음식, 거리로 나오다

역사를 살펴보면 거리의 대중 음식이 궁중 수라상에 오른 경우도, 반대로 궁중이나 사대부가 즐기던 귀한 요리가 길거리로 나온 경우도 있다. 잔치국수의 기원은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메밀이나 콩가루로 만들었던 초기에는 제사나 혼례 같은 잔칫날에 먹는 귀한 음식이었다. 본격적으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게 된 것은 조선 후기로, 이 무렵에는 국수를 팔지 않는 음식점을 찾기 힘들 정도가 되었다. 비빔국수, 온면, 냉국수 등 그 종류도 다양해졌다. 

지금은 국민 길거리 음식이 된 떡볶이 역시 왕실에서 즐기던 메뉴였다. 의례나 제례용으로 쇠고기와 함께 들깨를 넣고 볶는 형태가 많았고, 고추를 넣은 매콤한 떡볶이는 별미로 즐겼다. 지금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떡볶이의 모습으로 국민 분식이 된 것은 한국전쟁 이후다. 이제는 누구나 저마다의 추억을 소환할 수 있는 대표적인 길거리 음식이 된 떡볶이는 최근에는 다양한 종류의 밀키트로도 출시되고 있다. 

조선시대 부산의 동래 부사가 임금님께 진상했던 동래파전은 지역 향토 음식이 진상된 사례 중 하나다. 동래파전은 기장에서 재배된 조선 쪽파와 언양 미나리를 바탕으로 다양한 해산물을 올리고 쌀가루 반죽과 달걀을 더해 지져낸 파전이다. 일제강점기까지만 해도 요릿집에서 접대용으로 팔리던 상류층 음식이었지만 해방 이후 동래장터에서 팔리며 대중적인 길거리 음식이 됐다.

K-스트리트 푸드의 현주소

공간의 서사적 맥락, 흥미로운 역사와 함께 발전해 온 길거리 음식. 길거리 음식 한 그릇에는 역사, 문화, 전통, 사회상, 트렌드가 담겨 있다. 특히 변화에 민감하고 수용이 빠른 우리나라의 길거리 음식은 전통을 담은 '클래식'과 트렌디한 '힙'을 동시에 아우른다. 

이런 한국 길거리 음식, K-스트리트 푸드의 매력이 해외에도 통했다. K-콘텐츠를 통해 한국 음식과 길거리 음식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해외에서 한국 길거리 음식 밀키트와 가공식품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한국의 대중적인 맛을 체험할 수 있는 음식 박스를 배송해 주는 서비스도 등장했다. 떡볶이는 미국을 넘어 유럽 시장까지 점령했고, 유명 할리우드 스타는 김밥을 건강 레시피로 소개했다. 미국 CNN 방송은 '아시아를 방문하면 꼭 먹어봐야 할 50가지 길거리 음식과 음료'로 김밥과 떡볶이를 꼽으며 특히 떡볶이에 대해 "한국에서 많은 사랑을 받는 마음에 위안을 주는 음식"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마음의 위안을 주는 길거리 음식. 대표 길거리 음식을 ‘소울푸드’라 부르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일까. 궁중과 사대부, 서민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즐기던 한국인의 소울푸드가 세계인의 소울푸드로 한 걸음 나아가고 있는 지금, 한국 길거리 음식의 경계 없는 여행이 시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