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 읽기 좋은 날
해외 우수 한식당 <솔잎(Sollip)> 인터뷰
한식과 사람들
미식의 즐거움은 맛을 음미하는 데서 시작된다. 익숙한 식재료를 색다른 조리법으로 맛보거나, 낯선 음식에서 친근한 맛을 발견할 때면 그 즐거움이 배가 된다. 영국 런던에서 한국의 풍미를 세련된 파인다이닝으로 풀어내는 ‘솔잎(Sollip)’은 이러한 미식의 희열을 잘 아는 식당이다.
솔잎의 박웅철 오너셰프와 기보미 페이스트리 셰프는 유럽풍 요리에 한국의 맛을 가미하며 솔잎만의 특별한 정체성을 구축해 왔다. 그 결실로 한인 요리사 최초로 영국에서 미쉐린 스타를 획득했고, 올해 하반기에는 농림축산식품부와 한식진흥원이 지정하는 런던 첫 ‘해외 우수 한식당’에 솔잎이 선정되며 ‘K-미쉐린’까지 석권했다.
런던 미식업계에서 남다른 존재감을 뽐내고 있는 솔잎. 애정과 열정으로 솔잎을 키워 나가는 박웅철 셰프를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 솔잎(Sollip) 박웅철 오너셰프, 기보미 페이스트리 셰프
요리사 부부의 인생을 닮은 파인다이닝 식당
솔잎의 첫인상은 차분하고 편안하다. 여유로움이 느껴지는 공간 곳곳에는 한국의 나무 공예품과 도자기, 옹기가 자리하고 있다. 큰 창문에는 커튼 대신 모시와 옥사로 만든 가리개가 달렸다. 식당 전반에서 은은하게 묻어나오는 한국적인 미감은 박웅철 셰프와 기보미 셰프의 정체성을 대변한다.
“솔잎에서 선보이는 모든 것에는 저희 부부의 경험과 취향이 담겨 있습니다. 요리사로서 경험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걸어온 길과 인생의 경험이 담겨 있죠.”
박웅철 셰프와 기보미 셰프의 인연은 런던에서 시작됐다. 프랑스 요리를 공부하던 박 셰프와 페이스트리를 배우던 기 셰프는 프랑스 요리학교 ‘르 꼬르동 블루(Le Cordon Bleu)’의 런던 캠퍼스에서 만나 부부의 연을 맺었고, 이후 영국과 한국을 오가며 경력을 쌓았다. 이러한 부부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아 오픈한 곳이 솔잎이다.
박웅철 셰프는 개업 전부터 유러피안 다이닝을 기반으로 하는 솔잎에 한국의 정체성을 조화롭게 녹여내기 위하여 오랜 시간 고민해왔다. 박 셰프는 “의미가 있고 이유가 있는 한국의 소품을 직접 찾는 과정이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한국의 도예, 나무 공예, 옹기 장인을 찾아가 기물을 마련했고, 한국인 디자이너와 협업해 광목 소재의 유니폼을 맞췄다.
작은 디테일도 놓치지 않았다. 박 셰프는 “한지를 매우 좋아한다”며 “메뉴판도 한지와 비슷한 질감의 종이를 사용했고, 두꺼운 한지 위에 현무암을 올린 후 편백나무와 소나무, 베르가못 오일을 뿌려 천연 디퓨저로 활용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솔잎에 방문한 손님들이 본격적인 식사를 시작하기 전부터 자연스럽게 한국의 문화에 젖어들 수 있도록 한 것.
한식에서 영감을 얻은 퓨전 요리
얼핏 보기에 솔잎의 코스요리는 한식과 거리가 멀어 보인다. 그러나 한 입 먹는 순간, 혀 끝을 맴도는 한식의 풍미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솔잎은 조리과정 전반에 오미자, 쌀, 매생이, 장류 등 국산 식재료를 활용한다. 박웅철 셰프는 “무엇보다도 억지스럽지 않은 조화를 추구한다”며 “프랑스 요리를 공부했고 관련된 곳에서 경력을 쌓아 왔지만, 한국에서 한식과 자라난 한국인이니 자연스럽게 한국의 맛을 더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성을 담은 음식에는 요리하는 사람의 인생이 스며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 발효 고추장 소스를 활용한 스쿼브(Squab, 어린 비둘기) 요리
‘무 타르트 타탕(Daikon Tarte Tatin)’은 오픈 이래 꾸준하게 메뉴판 한 켠을 차지해 온 솔잎의 대표 메뉴로, 프랑스 디저트인 사과 타르트를 한국의 식재료로 재해석한 요리다. 박웅철 셰프는 “솔잎의 정체성과 방향성이 가장 잘 담긴 요리”라며 “김치의 주재료이자 반찬이나 국 등에 자주 사용되는 무를 활용했다”고 소개했다.
▲ 무 타르트 타탕 (Daikon Tarte Tatin)
기보미 페이스트리 셰프와 함께 완성한 무 타르트 타탕은 아이디어부터 재료, 조리법까지 모두 한식에서 영감을 받았다. 얇게 저며 소금에 절인 무로 타탕을 만들고, 보리차에서 착안한 보리 글레이즈, 볶은 참깨, 그리고 아홉 번 구워 만든 죽염을 사용해 마무리한다. 여기에 태운 볏짚의 향을 입힌 감자 퓨레(purée)를 곁들여 깊은 풍미를 느낄 수 있게 했다.
감태를 활용해 만든 애피타이저, 대추를 넣은 디저트, 장아찌를 곁들인 메인 요리까지. 한국 식재료의 외국어 표기를 그대로 메뉴판에 적어낸 솔잎의 다채로운 음식은 끊임없는 연구의 결과물이다. 박웅철 셰프는 “현지에서 구할 수 있는 한정된 한국 식재료로 최선의 결과물을 내기 위해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시도해보는 작업을 많이 한다”며 “셰프로서 완성도를 높이는 동시에, 한국 식재료와 조리법을 손님들이 흥미롭게 즐길 수 있게 하는 데 중점을 둔다”고 설명했다.
박 셰프는 “서비스 측면에서도 한국의 ‘정’을 전달하고자 한다”며 “한국의 정서와 문화를 손님들이 직접 체감할 수 있도록 진정성 있게 다가가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솔잎을 방문한 고객들이 한국의 가정집에 초대받은 듯한 따뜻한 행복감을 느꼈으면 한다는 바람이다.
믿음과 자부심으로 그려내는 한국의 맛
박웅철 셰프에게 솔잎은 자식 같은 존재다. 그는 “솔잎을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사람’ 같다”며 “저희 부부의 손에서 탄생했지만, 모든 구성원들이 동일한 목표 아래 함께 키워 나가는 인격체와 같다”고 말했다. 이어 “솔잎이 많은 것을 베풀며 꿈을 나누는 행복하고 의미 있는 인생을 살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솔잎을 향한 진한 애정이 묻어나오는 대목이다.
런던 첫 해외 우수 한식당으로 선정된 만큼, 남다른 포부와 책임감도 가지고 있다. 박 셰프는 “런던은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이는 것에 익숙한 도시”라며 “불과 5년 전만 해도 한정적이었던 한식당을 이제는 다양한 형태로 볼 수 있고, 한식에 대한 관심도가 그 어느 때보다도 높다”고 말했다. 그는 “솔잎만의 기준을 지키고, 우리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믿음과 자부심을 바탕으로 멋진 그림을 그려 나가고 싶다”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한식에 대한 관심이 뜨거운 요즘, 솔잎의 여정은 이제 시작이다. 런던에서 울려 퍼지는 한국의 맛과 이야기가 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길 기대해본다.
솔잎 (Sollip)
주소 | Unit 1, 8 Melior St, London SE1 3QP
영업시간 | 수요일 - 목요일 (18:00~21:00), 금요일 - 토요일 (12:00~14:30, 18:00~2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