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 읽기 좋은 날
Vol 58. 시간의 미학 Ⅱ, 발효 그리고 젓갈
젓갈의 감칠맛 그득한 강경 여행
골골샅샅 맛여행
평양과 대구 그리고 강경의 공통점이 있다. 조선의 3대 시장으로 꼽을 만큼 큰 장터가 열렸던 지역이다. 평양과 대구는 그렇다 치고, 강경은 대체 어떤 곳이길래 그렇게 큰 시장이 형성되어 있었을까. 충청 지역 농수산물 유통의 중심지였던 강경이 젓갈로 유명해진 이유가 궁금해 길을 나섰다. 그 길에서 발효의 깊은 감칠맛을 선사하는 젓갈 백반도 빼놓을 수 없다.
글·사진 김정흠(여행작가)
충청 지역 농수산물 유통의 허브
강경은 충청남도 논산에 있다. 충청도 지역을 구석구석 훑고 서해로 빠져나가는 금강이 호남평야를 만나는 곳이다. 배를 타고 서해에서 금강을 거슬러 올라오면 도달하는 포구마을이 바로 이곳이었다. 수운을 통한 상거래가 활발했던 조선시대에는 강경이 충청도 지역의 중요한 관문 역할을 담당했을 정도로 번성했다.
오래전부터 강경은 물류의 중심지였다. 금강 물줄기를 따라 배가 드나들 수 있어 수산물을 쉽게 접해왔고, 드넓게 펼쳐진 곡창 지대에서 수확한 곡식을 전국 각지로 운송하기 위한 전초기지 역할을 수행했다. 충청 지역 농수산물 유통의 허브였던 셈이다. 농산물이야 다양한 방식으로 저장할 수 있었지만, 수산물은 쉽지 않았다.
쉽게 상하기 때문이다. 강경 사람들은 포구로 몰려드는 수산물 재고를 오랫동안 저장, 보존할 방법이 필요했다. 강경 사람들이 염장을 선택한 이유다. 강경 사람들은 점점 염장 기술을 발달시켰고, 이로 인해 각종 젓갈류를 생산, 판매하며 성장했다.
농수산물 유통의 중심지였던 강경은 1900년대에 들어 더욱더 북적였다. 일본인이 뱃길을 통해 강경으로 들어온 것이다. 1910년 한일은행 강경지점이 문을 열었고, 주변 지역에서 사람들이 몰려와 일거리를 찾았다. 청주와 공주, 천안 등 주변 지역의 상인들도 강경을 오가면서 물건을 받아 갔을 정도란다. 강경에서 돈 자랑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괜히 나온 것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 화려한 모습은 경부선과 호남선 철도가 생기기 전까지만 유효했다. 철도 시대가 열리면서 배에 화물을 싣고 다녔던 수운의 매력이 떨어졌다. 내륙의 큰 포구였던 강경에도 사람들의 발길이 줄어들었다. 6.25전쟁 이후, 정부에서 전략적으로 부산항을 키우기까지 하면서 강경과 같은 내륙의 포구 마을은 점차 사라졌다.
그래도 강경은 여전히 멋진 곳이다. 근현대사의 현장이 오롯이 남아 있는가 하면, 여전히 전통적인 방식으로 젓갈을 담그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제는 고요해진 금강과 강경포구 터를 바라보며 평온한 분위기도 즐길 수 있다. 젓갈백반으로 강경 젓갈의 매력도 한껏 느껴보자. 마음에 든다면 강경젓갈시장에 들러 젓갈을 종류별로 구매해보는 것도 좋겠다.
강경젓갈 맛보러 떠나볼까?
이제 본격적으로 강경젓갈을 찾아 떠나보자. 저렴하게 질 좋은 젓갈을 판매하는 시장은 강경읍 중심부에 있다. 길을 따라 쭉 이어지는, 난전 형태의 시장은 아니다. 상가 건물에 자리를 잡고 깔끔하게 젓갈을 저장해 둔 채로 손님을 맞이한다. 이른바 ‘젓갈백화점’이다.
강경젓갈시장에는 수십 종의 젓갈이 준비돼 있다. 우리나라에서 이만큼 다양한 젓갈을 만나볼 수 있는 곳은 강경뿐이지 않을까. 잘 발효된 젓갈이 보관 시설에 가득하다. 업체마다 젓갈 발효와 저장을 위한 토굴 시설까지 대규모로 갖춘 덕분에 좋은 품질의 젓갈을 일 년 내내 선보일 수 있다는 점이 강경젓갈시장의 강점이다.
어느 상점이든 웬만한 종류의 젓갈을 모두 취급한다. 가격대도 대략 평준화돼 있다. 마음에 드는 곳을 하나 골라서 젓갈 쇼핑을 즐겨보자. 김장용 젓갈은 물론이고, 요리에 사용할 젓갈, 식사 때 반찬으로 즐길 젓갈도 많다. 잘 모르겠다면 상인들에게 추천받는 것도 좋겠다. 시식해보고 결정하는 것은 어떨까.
젓갈의 종류와 맛에 관심은 있지만, 아직 제대로 경험해 본 적이 없다면 젓갈백반을 맛보는 것을 추천한다. 강경젓갈시장 인근에는 무려 16종의 젓갈을 한 끼 식사로 내어주는 ‘젓갈백반’ 전문 식당이 있다. 젓갈백반에는 주로 반찬으로 즐길 수 있는 젓갈이 등장한다. 영원한 밥도둑, 오징어젓과 명란젓은 기본이고,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낙지젓, 어리굴젓 등등 다양한 젓갈을 맛볼 수 있다. 지나치게 짜게 먹지 않도록 담백한 맛의 된장찌개, 부드러운 누룽지도 함께 내어준다. 공깃밥 한 그릇으로는 모자라다. 두 그릇 정도는 야무지게 해치워 보자.
보다 깊은 강경젓갈 이야기
강경포구가 있던 강가에는 이제 강경젓갈전시관이 자리한다. 배 모양의 이 건물에는 강경젓갈에 관한 다채로운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다. 강경젓갈의 역사부터 맛의 비밀, 젓갈을 만드는 방법과 젓갈의 종류, 강경젓갈시장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강경젓갈의 역사는 꽤 깊다. 상온에서 쉽게 부패하는 수산물을 오랫동안 보관하기 위해 염장 방식을 사용했던 것이 그 시작이었단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인 서유구가 쓴 <임원경제지>에도 그 모습이 그려져 있다. 강경포 어선들이 청어와 조기를 많이 잡았고, 인근에서 나는 소금으로 ‘어염(젓갈로 추정)’을 만들어 주변 지역에까지 팔았다는 이야기다. 강경 지역의 특별한 염장법으로 발효 숙성한 젓갈은 조선시대에도 이미 전국적인 명성을 자랑했다.
1900년대 들어 강경이 더욱더 발전하면서 강경젓갈의 생산, 판매량은 훨씬 늘었다. 전국 소비량의 절반가량을 강경에서 생산했다. 경부선 철도 건설로 인해 수운 산업이 경쟁력을 잃으면서 강경 지역 또한 쇠퇴하게 되었지만, 여전히 젓갈만큼은 전국 최고로 여길 정도로 그 맛과 품질이 뛰어나단다.
마지막 전시실에서는 강경 지역의 현재 모습을 소개한다. 젓갈을 만드는 모습과 강경젓갈시장의 활기찬 모습 등을 사진과 모형 등으로 전시하고 있다. 대표적인 발효 식품인 젓갈을 활용해 여러 음식을 만들 수 있다는 내용까지 만나고 나면, 강경젓갈의 맛이 더욱더 궁금해질 것이다.
강경에서 만나는 근현대사 이야기
앞서 언급했듯이 강경은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사이에 일본인이 많이 들어와 살았던 지역이다. 상업 도시에만 건설했다는 한일은행 강경지점이 시장 한쪽에 자리하고 있으며, 바다를 통해 큰 배가 들어왔던 강경포구의 흔적 또한 여전하다. 당시에 건설한 적산가옥, 서양식 건축물 등을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강경읍의 골목길을 따라 거닐어보자. 곳곳에 적산가옥이, 역사의 현장이 많다. 시작점은 강경역사관이 좋겠다. 한일은행 강경지점 건축물이었던 이곳에는 지역 토박이들이 오랫동안 보관하고 있었던 옛 물건들을 한데 모아 전시한다. 그 뒤로는 화려했던 과거의 강경을 재현한 카페, 양과자점, 호텔, 식당 등이 자리한다. 강경구락부라는 공간이다. 마치 하나의 근현대사 테마 공원을 조성한 것처럼 어우러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100여 년 전으로 돌아가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겨보자.
강경은 침례교와 천주교 모두에게 역사적인 의미가 있는 성지이기도 하다. 1896년 국내 최초의 침례교 예배가 바로 이곳에서 있었다. 마을을 내려다볼 수 있는 강경산(옥녀봉) 꼭대기가 바로 그곳이다. 강경침례교회 최초 예배지는 인천과 강경을 오가며 포목 장사를 했던 지병석 씨의 집이다. 이곳에서 침례교 선교사 파울링 부부와 최초로 예배를 드렸다는 것. 우리가 둘러볼 수 있는 것은 ㄱ자 모형의 초가집이지만, 침례교 신자 사이에서는 교회로 알려져 있다. 논산시에서 지정한 향토유적 제38호다.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 김대건에 관한 이야기도 강경에서 찾아볼 수 있다. 김대건이 사제 서품을 받은 뒤 우리나라로 돌아와 가장 먼저 발을 디딘 곳이 이곳, 강경이다. 김대건이 조선인 최초로 사제 서품을 받은 뒤, 우리 땅에서 처음으로 집전한 미사가 강경에서 있었다. 강경성지성당에서 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살펴볼 수 있다.